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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일곱 번째 페이지 - 부산 삼익비치 아파트

     

    난 96년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때

    (이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 것도 같은데)

    아버지 사업으로 인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가 1년 동안 잠깐 살았었다.

    그곳이 재계발 확정이 된

     

    "부산의 삼익비치아파트"

     

    내겐 이 곳 부산에서의 1년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있다.

     

    당시 우리 집은 301동 606호에 살았었다.

    거실에 타~~ 악 앉으면 저 광안리 바닷가가 보였던 집이다.

    그때 당시 광안대교를 짓고 있었으면

    다리 지지하는 기둥 기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금 저 집에 살았으면 엄청 이뻤을 거 같다.

     

    정말 오랜만에 광안리를 찾았다.

    부산 출장 중에 시간이 남아 정말 오랜만에 들렸던 광안리이다.

    항상 부산 가도 여기 가야지 가야지 했었는데 못 갔었다.

    아마 내 기억에 마지막으로 갔던 게 2000년도이니까 근 20년 만에 간 곳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파란색 아파트가 301동 내가 살던 아파트이다.
    광남초등학교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광남초등학교에 다녔고

    이렇게 조그마한 곳이였나 싶다.

    여기서 축구도 많이 했는데, 그떈 왜그렇게 크게 느껴졌을까.

    지금은 잔디 지만 예전에는 흙이였고,

    쌈박질하던 스탠드, 수돗가도 그대로고.

    아. 당시 나는 서울에서 전학을와 사투리도 못쓴다고 놀림당하고

    뺸질이라고도 놀림을 많이 당했다.

    그래서 그냥 다 들이받았고, 쌈박질도 많이 했다.

     

    정말 많이 바뀌었다.

    단지 내에 있는 벚꽃나무와 아파트 옆에 조성돼 있는 방파제 산책길

    이곳은 여전히 마을 주민들,

    주변 관광객들, 낚시꾼들이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점은 변함이 없었다.

    나도 여기 방파제에서 아버지와 처음으로 낚시를 해봤다.

    잡아봤자 망둥어였지만, 방파제에서 파도에 젖고

    같이 잡은 고기 끓어 올리고 했던 재미난 기억이 있다.

    더구나, 아버지의 무서웠던 충고.

    "혼자서는 특히 어두울 때는 더더욱 더 오면 안 된다.

    여기 밑에 빠지면 네가 아무리 소리 질러봤자 파도소리에 묻혀서 위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못 들어서 결국 넌 여기서 죽을 거야. 

    그러니 혼자서는 절대 오지마! 알겠니?"

    이 뒤로 혼자서는 방파제에 절대 안 올라갔던 거 같다.

    친구들과 같이 갔으면 모를까.

    죽는다니 무서웠다.

    301동 옆 단지 내부 길. 저 나무들이 다 벚꽃나무다.

    단지 안에 있던 상가의 가게들 중에는 내 기억에 남아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만화방이라던지, 가던 미용실 이라던지.

    하나 있다면 은행은 남아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스포츠 센터.

    실내 / 실외 수영장을 운영하던 스포츠 센터가 있었지만

    현재는 운영을 안 하는 듯 보였다.

    그것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난 여기서 수영을 배웠으며,

    당시 친구들과 야외 수영장에 자주가 신나게 놀던 기억이 있다.

    천재호라는 친구랑 자주 놀러 다녔다.

    (참 마음씨 착한 친구였는데, 

    전학 오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안 닿았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수영은 배우기 싫었으나

    당시 왜소했던 체격 탓에 아버지가 억지로 시켰던 운동이다.

    운동 끝나면 출입구에 있던 분식집에서

    늘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먹었고

    그 덕에 난 덩치가 또래보다 조금은 더 커진 걸로 기억한다.

     

    혼자 맥주 들고다니면서 낮부터 밤까지 계속 있었다. 그만큼 난 이 동네가 좋다.

    하루 종일 있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도 생각난다.

     

    당시 외할머니 외할어버지가 이 단지 내에 사셨었다.

    207동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나와 바둑을 두기 위해 책을 사서 공부를 하시며

    틈만 나면 나랑 바둑을 두셨다.

    그리고 이곳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 앞니를 가져가셨다.

    앞니를 실로 꽁꽁 묶은 후 

    긴장을 풀며,

    "어?! 저거 모냐?!?!"

    라는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내 머리는 뒤로 젖혀지고

    앞니는 할아버지 손에 쥐어진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빨 뽑힌곳 보다 이마가 더 아팠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기 방파제에서 항상 두 손 꼭 잡고 운동하셨는데

    새벽에 나오 실 때면 

    저기 사진에 보이는 빨간 조형물 자리가 예전에는

    통통배들이 새벽마다 들어왔었다.

    잡은 고기인지, 잡은 고기를 팔고 남은 것인지

    여튼 통통배가 새벽에 들어와 생선들을 팔 곤 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생선들을 사서

    우리 집 문고리에 매달아 놓고 가셨다.

    그럼 우리 어머니는 그 생선으로 우리 반찬으로 구워 주셨었는데

    그 장면들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친구들과 방파제 그 길에서 롤러 브레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탈 때면 할아버지가 슬~쩍 나오셔서

    잘 놀고 있는지, 넘어져 다치지는 않는지

    항상 지켜보고 계셨다.

    그리고 들고 온 음료수도 친구들에게 나눠 주시기도 하셨는데

    참 다정한 할아버지셨다.

    아파트 단지 반대편에는 조그마한 놀이 공원이 있다.

    당시 광안리 해수욕장은 깨끗한 편이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처럼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곳이 아니었다.

    가끔은 쓰레기도 떠 내려오고 그랬으니까.

     

    해변을 따라 쭈~욱 반대편으로 가다 보면 저런 조그마한 놀이동산이 있다.

    애들이 즐기기 딱 좋은 놀이동산이다.

    조그마한 바이킹, 방방이, 뽑기 등등

    아직도 있더라... 얼마나 반갑던지..

    5학년 4반 이었던 친구들과  자주 왔었다.

    몇몇 여학생들과 남학생들과

    지금도 여기 살려나 모르겠다.

     

    많이 바뀐 광안리다. 상점들도 좋은 곳이 많이 생기고

    덕분에 걷다 지치면 그냥 아무대나 들어가

    맥주 먹고 나와서 또 걸어 다녔다.

     

    남천동은 정말 내가 좋아했던 동네다.

     

    다음날이 쉬는 날이었다면

    난 분명히 편의점에서 대강 뭐 좀 사다가

    방파제에 앉아 소주를 먹었을 거다.

    옛날 생각하면서

    옛 친구들 생각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정말 쓸 말은 많지만..

    제일 좋은것은 빠른 시일내에 한번 더 가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살던 동네가 조금 있으면 없어져.

    우리 같이 가보면 좋을텐데,

    그때 까지 삼익비치아파트가 기다려 줄지 모르겠네.

    - 언젠가 이 글을 보고 있을 너에게 남기는 스물일곱 번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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